[성명서]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의 위헌적인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의결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2026년 8월 13일 국회 기후위기 특별위원회(기후특위)는 전체 회의를 열고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의결을 진행했다. 헌법소원 결정에 따라 2031-49년의 장기 감축 목표를 담은 법개정을 결정한 것이다.
오늘 의결된 개정안은 2035년 53~61%, 2040년 69~80%, 2045년 84~90%라는 범위형 목표를 두면서 실제 배출권거래제 등 규제가 적용되는 기준은 하한으로 정했다. 법에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들어갔지만, 그보다 빠르게 위험을 줄이는 경로는 국가가 반드시 따라야 할 기준이 아니라 가능성으로 남았다.
그러나 국회의 결정은 매우 유감스러울 뿐이다. 오늘 기후특위 회의에서 누군가는 자신이 이 법을 만드는 데 참여한 것을 반성하며 사과했고, 누군가는 여야 합의의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이 안이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에 온전히 부합하는지 의문을 남겼다.
국회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합의한 것은 기후위험을 충분히 줄이기 위해 가능한 여러 경로 가운데 선형경로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더 후퇴하는 내용을 넣지는 말자는 합의까지였다. 국회 안에서는 선형감축조차 과도하다거나 산업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고, 감축을 더 뒤로 미루려는 요구까지 협상의 한쪽에 놓여 있었다. 회의의 논점은 ‘얼마나 줄여야 위험을 충분히 낮출 수 있는가’보다 ‘산업이 얼마나 줄일 수 있다고 말하는가’였다. 결국 정치가 협상한 것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수준보다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 수준에 가까웠다. 그 압력 속에서 여야가 겨우 도달한 합의는 적어도 5년 단위의 목표(2035, 2040, 2045년)만큼은 선형경로보다 더 뒤로 물리지 말자는 것이었다.
논의의 순서가 달랐어야 했다. 먼저 기후위기의 위험을 어느 수준까지 줄여야 하는지, 헌법상 기본권 보호와 미래 부담 이전 금지가 어느 정도의 감축을 요구하는지를 판단하고, 그 경로를 실현하기 위해 산업과 노동, 지역의 전환을 어떻게 지원할지를 논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 국회는 ‘이 정도 감축은 산업이 어렵다’, ‘이것도 너무 빠르다’, ‘기술이 아직 없다’, ‘다른 나라가 하지 않는다’는 주장들이 반복적으로 논의의 경계를 만들었다. 목적을 먼저 정하고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교집합을 먼저 정한 뒤 그것을 기후목표라고 부른 것이다.
이번 결과를 ‘좋은 안을 만들다가 조금 부족하게 타협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국회가 해낸 것은 국가가 앞으로 나아갈 장기 기후대응 경로를 제대로 세운 것이라기보다, 후퇴를 거듭하다 선형경로에서 멈춘 정도다.
그러나 ‘더 후퇴하지 않는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의 기본 전제였다. 헌법재판소가 요구한 것은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넘기지 않도록 국가가 장기적인 감축경로를 책임 있게 정하라는 것이었다. 시민들도 국회의 공론화에서 더 빠른 감축을 선택했다. 그런데 17개월의 논의 끝에 정치가 도달한 합의는 ‘더 뒤로 가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로, 얼마나 빠르게 앞으로 갈 것인지는 다시 선택사항으로 남았다.
왜 헌법재판소가 기본권 보호를 요구하고 시민들이 숙의 끝에 조기감축을 선택한 뒤에도, 국회의 협상장은 ‘얼마나 빨리 위험을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덜 해도 되는가’를 두고 이렇게 많은 힘을 써야 했는가. 국회가 겨우 이 정도의 합의에만 다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 결과의 부족함만이 아니라, 기후위기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애초부터 얼마나 낮은 지점에서 이어져 왔는지를 보여주었다.
국회는 시민에게서 결정권을 위임받았다. 그 권한에는 자신의 자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삶과 위험까지 결정 안으로 가져와야 할 책임이 따른다. 지금 당장 비용과 손실을 말할 수 있는 이해관계만큼, 아직 충분히 닥치지 않은 위험과 그 위험을 떠 안을 사람들의 삶도 결정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대표한다는 것은 마이크를 대신 잡는 일이 아니라, 그 마이크에 누구의 현실을 담을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회의에서 기후특위는 「기후위기 적응 및 회복력 강화에 관한 법률안」도 의결했다. 적응과 회복력 강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적응이 불가피할 만큼 위험이 커지고 있음을 인정했다면, 감축경로를 정하는 데서도 같은 위험 인식이 작동했어야 했다. 그러나 국회는 위험을 충분히 줄이는 방향을 세우기보다, 반복된 후퇴 끝에 남은 선형경로를 실질적인 이행의 합의선으로 확정했다. 법률에는 높은 목표까지 함께 적었지만, 실제 사회를 움직이는 규제는 낮은 목표에 연결했다. 위험이 커지고 있는데도 그것을 충분히 위험한 것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피해가 늘어난 뒤에야 불평등과 취약성을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계속 늦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기후위기의 위험 속에서도 누구나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받기 위해 헌법재판소를 향했다. 기후위기로부터 기본권이 지켜져야 함을, 그리고 지켜지지 않았음을 확인했음에도 기본권은 이해관계자들의 협상테이블에 올랐다. 국회가 직접 추진한 공론화에서 시민들은 더 진전된 논의와 결과를 내놓았지만 국회는 또다시 뒤로 물러나는 선택을 반복했다.
오늘 국회의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국회와 정부는 오늘의 결정을 입법의 완료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기본권 보호의 최소선까지 타협의 결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단지 법의 개정안을 의결했다는 사실이 여기에 담긴 하한이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하는 수준이라는 판단을 대신하지 못한다. 합의는 정치적 절차의 결과일 뿐, 기본권 보호의 충분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아니다.
이 하한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근거를 밝히고,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공론화에서 확인된 조기감축의 방향을 실제 이행기준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 국회가 타협한 자리에서 다시 밀려난 사람들의 권리를, 남은 입법 과정에서 바로 세워야 한다.
2026년 8월 13일 청소년기후행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