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오는 날 당근밭

안녕하세요 에디터 🐹보오입니다. 어제 제가 있는 지역에는 비가 거세게 내렸습니다. 이제는 많은 비가 내린다거나 폭염이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착잡한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이 동시에 찾아옵니다. 덥고 춥고 습한 날씨에 모두 안전하시길 바랍니다.

레터를 휴재했던 기간, 청기행은 많은 일을 겪으며 치열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양한 논의와 결정이 오고 간 와중에 오늘은 당근밭 일상과 헌법소원과 관련한 이후 계획을 조금 자세히 풀어보려고 합니다.

헌법소원 이야기

청기행은 6월 29일 다큐멘터리 Duty of Care(기후 재판) 상영회에 다녀왔습니다. 청소년기후소송의 변호인단인 플랜 1.5가 번역한 이 다큐멘터리는 우르헨다 기후 소송과 쉘 소송의 변호사를 취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상영회에서 청기행은 지금까지의 기후 소송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관객과 함께 나누는 시간에 참여했는데요,  청기행과 관객분들이 나누었던 이야기를 지금 공유합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까지 우리는 청소년기후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기후 위기를 정말로 막을 변화를 만들고자 고민해 왔습니다. 거리에서 피켓을 들기도 하고, 다양한 정책 의사 결정권자들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기후 문제에 함께 고민하는 사람들, 행동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정책 변화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위기를 막아냈느냐라고 한다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막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화석연료를 태우고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지구 온도를 한없이 상승시키는 사회 시스템은 공고합니다.  정치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만 작동해 왔습니다. 

사회 구조 변화를 통해 위기를 해결하려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라는건 결국 국가가 기후위기를 어떻게 막고, 위험 수준을 어떻게 줄일 건  지에 대한 방향이 담기는 기후위기 대응의 모든 기준점이자 시작점이기 때문입니다. 

청기행은 기후 운동의 주체로 활동하는 과정에서 변호사들을 만났고, 기후소송이라는 방법을 통해 국가에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는 게 가능할지 논의해 왔습니다. 실제 변호인단과 논의하면서 과학적으로, 국가 정책적으로, 법리학적으로도 소송을 청구할 근거가 충분하며 헌법소원 청구가 마땅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내부에서 함께 하던 19명의 청소년이 원고가 되어 국가의 대통령과 국회를 상대로 소송을 청구하게 되었습니다.

Q. 소송을 청구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3년 간의 소회가 어떠셨나요? 

2020년 3월, 기후헌법소원을 청구한 뒤로 3년이 지났습니다. 소송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소송 결과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청구하는 소송이 과학적으로도 국가 정책적으로도 너무 당연하고 마땅한 소송이니 금방 판결이 나올 것이고, 이 소송을 통해 기후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은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필요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해서 상승했고 매해 정점을 찍어왔습니다. 저탄소녹색성장 기본법 이후 탄소중립기본법까지 기후위기를 막을 수 없는 법이 연달아 제정되었습니다. 이 두 법은 기후위기를 막기 역부족인 법들입니다.

이러한 법 아래 역시나 위기를 막을 수 없는 하위 계획이 제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행동으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에 기여할 방법은 한정적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송은 위기에 직접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이 소송의 무게가 커져가는 이유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최소한의 하한선을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시에 크게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현재까지 방법 중 가장 나은 방법이라고 해도, 위헌 판결이 실제 기후위기를 막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법 영역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이 나도 입법과 행정의 영역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위헌 판결을 이끌어 내는 것은 중요합니다. 청기행의 기후 소송이 실제 삶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결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단순한 위헌 판결은 기후위기에 대처할 최소 수준을 국가 의무로 지정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입법과 행정 영역에서 기후위기를 막을 제대로 된 법을 만든다는 보장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위헌 판결을 끌어낼지에 더 주목합니다. 청기행의 목표는 독일 기후소송의 판결에서 더 나아가 한국 헌법재판소가 ‘국가의 미흡한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국가 기본권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기를 바랍니다. 또한 늦어지지 않는 판결을 원합니다.

청기행이 하고자 하는 것은 기후위기로 인한 위험의 수준을 낮춰내기 위해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사회시스템 전환, 사회적 안전망 형성입니다.. 헌법재판소가 위기를 똑바로 인식하고 제 역할을 다하여 늦지 않게 ‘제대로’ 된 내용의 판결을 내린다면 적어도 우리는 기후위기를 막을 기회를 처음으로 얻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