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컬러 다음은 퍼스널 정부
지난 8월 30일,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의 총괄분위 실무안이 공개되었습니다. 직전 레터에서 다뤘던 것처럼 전기본은 설비의 증감이나 기술 등의 조정을 담당하는데요, 이번에 발표된 실무안은 12월에 확정될 전기본의 초안입니다. 이 실무안을 토대로 환경부와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 후 국회와 공청회, 전력정책심의회를 거쳐 최종 전기본이 확정됩니다.
우선 가장 말이 많았던 전력수요량 예측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0차 전기본에서 강조하는 지점이 9차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부분인 만큼 수요전망 체계를 변경하였습니다. 태양광발전에 따른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총수요 전망체계*로 전환한다는 것입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36년의 최대전력 수요를 117.3GW로 도출하였습니다. 22년부터 연평균 1.4% 정도 증가하는 수치라고 합니다. 지난 9차 전기본에 비해서도 2030년 수요량을 100.4GW에서 103.4GW(전력시장 최대전력 기준)로 더 올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최대전력 수요는 여러가지 요소(산업, 인구, 경제 규모 등)를 고려하여 만들어지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산업에 필요한, 그러니까 성장 전망치라는 게 “기후위기고 뭐고 우리는 여기까지 갈 거고 그래서 필요한 전력, 설비 이만큼임.”이렇게 땅땅땅 하고 시작을 하니까 “재생에너지? 목표치 맞추려면 불가능해!”라는 결론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은 그 이후에. 어쩔 수 없다는 논리. (이걸 논리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선행 관계가 잘못되었습니다. 위기라고 호명될 정도인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일단 얼마만큼 온실가스를 줄여야 위기를 넘어갈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하지 않을까요. 그 이후 가능한 선에서 전기본을 설계한다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사고입니다. 아무리 요즘 시대가 발상의 전환과 융합적인 사고를 중요시한다고 해도, 정부부터 이렇게 모범이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정말 놀라운 사고방식입니다. 역시 전문가는 달라도 뭐가 다릅니다.
온실가스 감축 부문을 정리하자면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줄었습니다. 원전을 선두로 화석연료 기반의 발전 비중은 더 올라갔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으로 시대를 역행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미쳤습니까? 휴먼)
2030년 NDC 상향안(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이상/149.9백만 톤 감축)에 대해서도 달성 가능이라는 전망을 내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원전의 비중을 32.8%까지 올려 달성한다는 계획입니다. 반면 신재생은 주민 수용성과 실현 가능성을 감안하여 21.5%로 하향 조정(기존 NDC 30.2%)한 상황입니다. 원전은 주민 수용성이 참 좋은가 봅니다. 석탄은 21.2%로 지난 상향 안에 비해 아주 미세하게 줄어들었고 LNG는 기존의 19.5%에서 20.9%로 은근슬쩍 올라갔습니다.
발전설비 계획에서 원전은 ‘사업자의 의향을 반영하여’, 석탄은 ‘석탄발전 감축기조를 유지’, 신재생은 ‘사업자의 계획조사에 기반하여’ 실현 가능한 물량 수준으로 반영하였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발전원별로 맞춤형 의견 반영이라니. 정말 퍼스널한 정부입니다.
이번에 발표된 건 보도자료뿐이지만 전기본의 초안을 담고 있으며 이 내용을 토대로 논의 후 통과되기 때문에 내용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실무안이라고 해도 아직 공개된 자료가 적어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소식이 있으면 최대한 가져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뀐 시장 환경 반영(PPA, 자가용 PV)을 고려하여 총수요를 전망하고 거기서 자가용 발전량을 차감한 사업용 전력수요를 기준수요로 지정하는 것. 한마디로 자가발전용 전기가 판매 가능하게 되면서 그에 따른 전력수요의 상충 효과가 있지만 어차피 4차 산업혁명이나 전기화를 통해 전력 수요가 높아지면서 의미가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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