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요구사항
올해에만 기후재난을 몇 번 목격했는지 모릅니다. 전 세계를 덮친 가뭄. 유난히 긴 폭염. 그리고 장마와 태풍. 인류 역사상 최대치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겪으며 우리는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남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건가요? 말로만 기후위기 대응하는 정부, 우리는 이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까요?
사실 정부가 기후위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기후대응 예산 삭감,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축소, 화석연료와 원전의 퇴출을 유보하는 결정이 반년 안에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조별 과제 절망 편에 서 있습니다. 77억 명의 조별 과제이기도 하고 5천만 명의 조별 과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어느 쪽이든 절망 편입니다. 조별 과제는 사회악이고 2명 이상의 조별 과제는 망할 확률이 사람 한 명당 50%씩 높아지니까요.
5천만 조별 과제를 진행하기 위해 우리는 조장을 민주적인 투표로 뽑았습니다. 그런데 그 조장과 조장의 친구들인 정부가 학점을 포기하겠다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탈주 각을 세우지만 한번 나눠진 조는 세상이 뒤집어져도 바뀌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1. 2030 NDC 70%(217mtCO2 수준)로 상향해야 합니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7년 대비 70% 이상으로 상향해야 합니다.
기후위기를 막느냐 막지 못하느냐의 지표를 우리는 IPCC 1.5도 특별보고서에 기반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0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축해야 한다는 목표가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보고서는 모두가 똑같이 절반의 수치를 줄여야 한다고 해야 할 뿐, 과거와 현재의 배출 책임을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기후위기 해결에는 동의하지만 국가 간 배출의 책임과 감축할 역량이 모두 공평한 건 아닙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목표는 결코 공정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까지 배출해 온 배출 책임과 각 역량을 고려해 공정한 분담이 필요해졌습니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합니다. 이건 나만 잘하면 살아남는 경쟁이 아니라 누구 하나라도 잠수타면 점수가 깎이는 지옥의 조별 과제라는 걸.
우리나라는 감축의 역량과 배출 책임을 고려하여 2017년 대비 70%, 2억 톤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감축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현재 상황은 우리나라처럼 온실가스를 감축할 역량이 있는 나라들이 나서지 않으면 모두가 침몰하는 개미지옥입니다. 공정보다는 우리의 무사 생존을 위한 목표인 것입니다.
2.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새로운 논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꾸 실패한 옛날 정책을 꺼내 들어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서 배우는 생물이기도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생물이기도 합니다. 많은 실수를 반복했으니 이제는 좀 배울 차례입니다.
(2030년까지 탈석탄은 해야 합니다. 더 늦으면 답이 없습니다. 배출되는 탄소와 좌초자산을 감당할 역량이 지금으로서는 없습니다. 2030년 탈석탄을 위해 지금부터 발 빠른 전환이 필요합니다. )
화석연료의 대안은 화석연료가 아닙니다. 탈석탄했다고 해서 가스가 괜찮은 건 아닙니다.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니 괜찮다는 안일함이 우리를 기후위기 시대까지 내몰았습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늘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1명의 전문가가 아니라 100명의 당사자입니다. 100명의 이야기를 들을 자신이 없어 1명의 전문가를 선택하는 사람은 다수를 대변하는 정치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전문성이 아닌 당사자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논의 테이블을 통해 새롭게 감축 과정을 설계해야 합니다.
3. 모두가 안전할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이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적응하고 어떻게 재난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더라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는 차고 넘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폭염과 폭우, 가뭄, 태풍, 한파 등의 재해가 찾아올 것입니다. 직접적인 자연재해부터 생태계 변동으로 인한 식량과 식수의 부족 등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을 위협합니다.
이로부터 모두가 안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공공 서비스를 강화해야 합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보편적 복지의 영역을 확대하고 공공의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민영화는 기후위기의 최대 적입니다. 온실가스를 배출할수록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던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건 공기업의 적자가 아니라 우리의 세금을 수익 사업으로 이용하는 사회입니다.
우리의 위기는 바로 지금 당장의 위기입니다. 사회 안전망과 공공 서비스는 위기의 순간보다 발 빠르게 나서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순기능일 것입니다.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사회가 막연하고 허황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허황된 목표를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누군가를 희생하여 살아남는 방식은 결국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게 만드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