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고민
위의 재생에너지 이야기를 하며 정의로운 전환이 또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재생에너지는 결국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그런데 이건 그냥 에너지원, 그러니까 연료를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게 아니라 화석연료 기반으로 만들어 온 모든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전환의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제노동기구에서는 모든 이해관계에 가능한 한 정의롭고 포용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하고 국내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지역이나 산업의 노동자, 농민, 중소상인 등을 보호하여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 방향’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위의 정의로 정의로운 전환을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의로운 전환은 단순히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지원 제도 같은 것이 아니라 전환의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전환은 곧 기후위기 대응이고 기후위기 대응은 결국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을 궁극적으로 추구합니다. 헌법소원을 통해서도 증명한 기후위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는 곧 기후위기 대응이 또 다른 위기가 되어서는 안 됨을 함께 포함합니다.
그럼 정의로운 전환은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요? 이 코너의 본질이기도 한 전환의 상을 그리는 법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합니다. 특히 정의로운 전환은 기후위기 대응을 통해 안전한 사회의 상을 구체화하는 최종적인 목표와도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가장 먼저 본 건 바로 무엇이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입니다. 법에서 정의하는 정의로운 전환은 피해를 가정하고 이를 분담하거나 최소화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건 ‘소외되지 않음’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재생에너지와 석탄발전소만 단편적으로 놓고 보더라도 이 둘을 따로 보면 그냥 새로운 기술과 시대의 흐름에서 사라지는, 소외되는 노동자가 남습니다. 그럼 제도는 소외된 노동자들을 구제하거나 피해를 보상하는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석탄발전소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기후위기 대응 과정 중 하나라면 거기에는 당연히 이해관계자, 당사자가 필요해집니다.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대체할지를 함께 고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추상적일 수도 그냥 관념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소외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단순한 개념의 차이로부터 비롯될 수 있습니다. 폐쇄될 석탄발전소 노동자라는 입장에서는 고용에 대한 이야기만을 할 수 있지만 전환의 과정에 있는 이해당사자로서 어떤 전환이 필요한지, 적어도 변화의 과정에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대체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회가 사람을 소외시키는 것은 결국 당사자의 의지 없이 사회 밖으로 밀어버리는 것이니까요. 그들이 사회 안에서 어떤 변화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자리가 주어졌을 때 우리는 그다음 상을 좀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지 않을까요. |